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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회근 선생이 조용히 외칩니다
남회근 선생이 조용히 외칩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 2백년 동안 인류 역사의 진보 발전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공간적으로는 전 세계가 한 집안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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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회근 선생이 조용히 외칩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 2백년 동안 인류 역사의 진보 발전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공간적으로는 전 세계가 한 집안이 되었고, 통신수단 지식의 전파로 인해 종족관념상으로는 모든 국가의 국민이 한 집안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서로 등져서 지구촌에서 전쟁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며 형제끼리도 집안에서 다투고 있기에 인류사회의 동란은 빈발하고 있습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수 천년 동안 축적해온 문화가 있으므로 종교, 철학, 과학,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쟁의 불길을 끌 수 없어 사회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인류가 자나깨나 염원해온 평화와 행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으니, 뜻 있는 식자(識者)로 하여금 깊이 탄식하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인과의 법칙이 끊임없이 왕복순환하고 있습니다. 중세 이전에는 동서양의 사회 모두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향토에서 편안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중세 이후 과학의 발명에 따라 지식이 발전하고 인간의 욕망도 해양교통의 발달과 함께 팽배해졌습니다.
산업혁명이 인력을 대체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고 물질문명의 발전도 촉진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물욕에 눈멀어지면서 군국주의 침략의 횃불은 온 하늘에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을 당겼습니다.
과학과 물질문명은 인류생활의 편리에 공헌했지만 한편으로는 인류문화의 장애와 세계적인 대 재난의 조장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영공 개념은 우주과학의 발달과 함께 확장되고 있는데, 인류가 지구 밖의 다른 세계를 정복하고 추구하기 위해 지구상에서의 쟁탈을 포기할지 어떨지는 지금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인류의 운명과 시대적인 추세가 서로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은 기다려 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검증해보고 다시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내일의 천하를 알고 싶으면 먼저 오늘의 세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적대시하면서 죽이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쟁탈하는 것은 우선 말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이 자부하는 경제, 정치, 교육의 고도의 문화만 보게되면 만신창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동양의 유구한 나라인 중국과 인도만 두고봐도 자연과학 분야의 낙후와 물질문명의 빈곤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에, 비록 세상을 구하고 싶은 고심(苦心)과 시대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양약이 있건만,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아녀자라도 쌀이 없다면 밥을 지을 수 없듯이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남건만 그럴 힘이 모자라는 바에야 어찌하겠습니까?
새벽닭이 다 울도록 긴긴 밤 동안 온 세상이 다 취해있는 가운데에도 어찌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뭔가 좀 해 볼 수 없을까요?
우리의 전통문화는 사회적으로 볼 때 살아서는 잘 봉양하고 죽어서는 아쉬움이 없도록 해드린다는 효도 정신을 시종 중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예기 』(禮記)의 「예운(禮運) 대동편(大同篇)」에서 특히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노인들은 마치는 바가 있게 하고, 젊은이는 세상에 쓰이는 바가 있게 하며, 어린이는 자라나는 바가 있게 하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이 없는 자들은 모두 부양되는 바가 있게 한다”
공자는 상고 문화를 집대성하면서 효도를 모든 도덕행위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는 『대학』(大學)에서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공자의 손자 자사도 『중용』(中庸)에서 명성(明誠)의 가르침의 근본을 효제(孝悌)의 행(行)에 두었습니다.
이로부터 중국은 효의 도리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독특한 문화를 펴왔습니다.
이런 문화는 바로 십자가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위로는 부모에게 효도하여 천하에 까지 미치며, 아래로는 자녀를 사랑하면서 만세까지 이어가고, 양쪽으로는 형제 자매 부부에서 친구에 이르는 십자가가 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입니다.
이는 중국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중국 문화의 상징이 됩니다. 서양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희랍문화의 전통을 이어 자유를 주장하여 그 나름의 특수한 공헌을 했지만 완전히 개인의 자유를 그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우리문화는 19세기 이래로 서양문화의 충격을 받았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그 온전했던 십자가도 이리저리 찌그러지게 되었습니다.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소가족제도가 보편화되고 효제의 도리도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이 오갈 데 없어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면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처량한 만년의 모습은 시대의 필연적인 추세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는 문제는 수 천년 동안 종교와 철학 분야에서 논쟁해왔지만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논하지 않기로 하고,
교육의 입장에서만 보면 사람은 일단 태어나면 갓난애로부터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에 이르도록 언제 어디서나 교육적인 배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태교,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일련의 교육이 있는데, 이런 교육도 그 역사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교육사상과 방법 면에서 각기 특수한 정신이 있습니다.
서양문화를 보면 18세기 이전까지는 수시로 일깨워주는 종교교육이 있었기에 아직은 대단히 평온하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후 과학혁명의 창제가 가져온 고도의 물질문명은 사람들의 마음이 물욕을 쫓도록 만들고 이성이 현실에 도취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유의 종교와 철학으로는 장차 거꾸러지게 할 이 광란을 이미 수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미쳐 있는데 누가 홀로 깨어 있었을까요?
19세기 중엽 덴마크의 의사였던 키에르케고르는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고 기계문명이 초래한 온 세상의 광란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내겠다며 실존주의를 제창했습니다.
본래 세상을 치료하고 사람을 치료하겠다던 그는 뜻밖에도 그 자신조차도 치료할 수 없어서 중년이 못되어 우울증에 걸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성숙하지 못한 이 실존주의는 시대의 자극으로 유럽에 널리 퍼지고 미국에서도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견강부회하고 곡해하여 독약으로써 갈증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예컨대, 정신병 치료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마취시키는가 하면 중국도교의 찌꺼기를 표절하고 소승불교의 완공사상(頑空思想)을 견강부회함으로써, 나체로 지내거나 온몸에 재를 발랐던 인도 상고시대의 외도 수행자들과 비슷한 풍조를 형성하여 인심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무지한 청년들로 하여금 장발에 지저분한 얼굴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잔인한 살인, 강도, 강간을 자유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악한 풍조를 부채질하여 삽시간에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오늘날은 종교가 쇠퇴하고 철학이 몰락했으며 교육이 파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전염병의 확산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 해독을 입는 사람은 면역력이 부족한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청년들의 중독은 바로 다음 세대의 생기(生機)가 압살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이 위기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응당 청소년들의 도덕과 재능 교육에서 착수하여 그들의 의지를 격려하고 이끌어야 하며, 내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면서 남의 자식까지도 내 자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옛 가르침에 따라, 미망에 빠져있는 이 한 세대로 하여금 다시 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광명의 대로를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문화학술은 세계인류의 운명과 국가사회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참으로 심원하면서도 거대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느 국가사회의 변천과 전쟁의 원인은 정치와 경제의 동란에 있는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동란의 근원은 역시 문화학술에 있었습니다.
15세기 이래로 유럽의 문예부흥운동은 과학의 발전을 촉진시켜 서양사회에 물질문명을 가져왔습니다. 그 후 산업혁명으로 서양의 문화, 학술, 사상은 새로운 발전과정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국가들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서양문화를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대단한 명성과 편리를 가져온 전기화의 기적과, 굳센 전함에 실린 날카로운 대포의 위력 앞에 고유문화에 대한 신념이 동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일어나 서구를 뒤쫓아 가고자 맹목적으로 서양의 과학을 배워, 마침내 전반적으로 서구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동양국가들이 급히 서구를 뒤쫓아가기에 바빴던 바로 그 당시에, 서양사회는 물질 문명의 발전 속에서 부화(孵化)한 유물사상이라는 검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사회를 썩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서양문화를 대표하는 미국문화를 보면, 종교신앙의 가치 폄하와 인문철학의 쇠퇴, 그리고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교육사상 등, 가는 곳마다 지자(智者)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고 인자(仁者)로 하여금 근심하게 합니다.
청년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방황과 맹목적인 행동에 빠져있는가 하면, 노인들은 돌아가 쉴 의지처가 없는 채 절망의 지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과학문명을 심각하게 풍자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서양이 추구 숭상한 물질문명의 자업자득의 결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양 각 국에도 파급되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염원해 왔던 세계평화와 행복을 환멸에 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리 상으로 말한다면, 동양국가는 물질문명을 논할 만한 정도가 못되므로 그런 구렁텅이에 빠질 지경에 이르지 않는 게 마땅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약육강식의 현실 세계에 살아가고 있으니 경제실력이 없는 국가는 남이 좌지우지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향유를 탐한 나머지 자기 집에 있는 보배창고는 내버리고 길을 헤매면서 돌아올 줄 모르니, 그 애처럽고 걱정되는 정도가 서양국가 보다 더 심합니다.
이에 따라 세계의 많은 선견지명의 인사들은 금후의 세계 정세에서, 서양문화의 물질문명 발전 면에서의 결점을 보충해 주고 서양이 종교, 철학의 쇠퇴와 폐단에서 떨쳐 일어나게 해줄 수 있는 양약은 오로지 동양문화의 부흥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뭔가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동양문화의 결정은 유불도 삼가의 사상에 있습니다. 근년 들어 서양인들이 동양사상을 연구하면서 선학(禪學)으로 귀착하더니, 최근에는 동양의 과학정신을 탐구하면서 유가와 도가의 근원인 역경(易經)에 쏠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마음을 밝혀 자성을 보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의 불가의 지혜,
생명을 온전하게면서 참됨을 보호하는 전생보진(全生保眞)의 도가의 수양,
그리고 자기도 서면서 남도 세워주는 입기입인(立己立人)과 품행을 돈독히 하는 돈품려행(敦品勵行)에서 나아가 대동세계(世界大同)를 이룬다는 유가의 이상,
이 세 가지를 만약 서양문화와 교류시켜 융회할 수 있다면 반드시 과학사상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물질문명이 잃은 바를 구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송찬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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